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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후재영정 / 감곡매괴성당 / 서정우가옥 / 김주태가옥 / 경녕군부인김씨묘 / 비지정문화재
 


음성군 감곡면 문촌2리

유적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음성군 감곡면 문촌2리에 속한다. 충주 앙성에서 장호원 방면으로 가다보면

이문고개를 넘게 된다. 이 이문고개에서 1㎞ 쯤 내려가면 문촌2리 시내 버스 서는 곳이 나타나며 바로

뒤편으로 신촌 농장이 자리한다.신촌농장을 끼고 왼쪽으로 난 우마차 길을 따라 올라가면 쓰레기하치

장과 사슴농장이 눈에 들어오는데, 가마터는 사슴농장 동쪽으로 펼쳐진 복숭아 과수원에 위치하고 있

다. 38번 국도와는 북쪽으로 약 130m쯤 떨어져 있다. 이곳의 지세는 대체로 북에서 남으로 뻗어 내리

는 산줄기가 30∼40m사이로 나란히 있고, 그 사이에 얕은 계곡이 형성되어 있는데, 서쪽 산줄기 동편

경사면에서 자기가마터 흔적을 찾았다. 가마터의 북쪽으로 소로를 내는 과정에 유구 일부가 파괴된

듯 길옆에 1m 두께의 자기 재퇴적층이 존재하며, 이를 중심으로 경사면에 도지미, 불탄흙[燒土], 자

기조각 등이 많이 산포되어 있다. 채집한 자기조각으로 보면 대접·접시 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잔·바

리·병·제기 등도 있어 다양한 편이다. 이들 자기의 굽은 거의 오목 굽 형식이고, 모래받침으로 포개어

구었으며, 특히 접시 류에는 그릇 안 혹은 밖에 약식화한 철회문과 붓 끝으로 찍거나 꾹꾹 누른 것이

많이 있어, 이곳 가마터 자기의 한 특징을 이룬다.

요컨대 문촌리 가마터는 채집된 유물로 미루어 조선 중기에 지방에서 주로 일상생활에 많이 쓰이는

그릇을 굽던 가마터로서,가마의 활용기간은 길지 않은듯 하다.17세기 이후의 가마터로 추정된다.

(충북대학교박물관, 1993.《충북지방 도요지 지표조사보고서》)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

행정구역상으로는 충북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 원거리에 위치한다. 오갑초등학교 북서쪽 300m 지점이

며, 38번 국도가 지나가는 원거리 마을 앞쪽과 과수원자리가 원(院)이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원터의

일부는 도로공사 과정에서 파괴되었으며, 일부는 과수원(포도)경작으로 훼손되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과수원에서 기와조각 몇 점이 채집되었을 뿐이다. 원은 출장가는 관리들이 숙박하던 곳

으로, 국가의 업무로 여행하는 사람들의 숙식을 위하여 중요한 도로나 인가가 드문 곳에 두었다. 여기

에는 원주(院主)가 배치되고 원위전(院位田)을 주어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도록 하였다.

(충북대학교선사문화연구소, 1992)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

문촌리 윗오갑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마을보다 지대가 약간 높은 곳에 옥산사(玉山祠)가 자

리하고 있다.본래 이 옥산사는 괴산군 연풍면에 있던 문산서원(文山書院)이 대원군때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자, 1908년 완산 (完山) 이씨문중에서 이곳에 옥산사를 재건한 것이다.옥산사에는 주자 (朱子),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과 함께 직재 이기홍 (直齎 李箕洪)을 모시고 매년3월 中丁日과 9월 中丁日

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배향(配享)되고 있는 이기홍(1641∼1708)은 숙종조의 학자로 송시열의 문인인

데, 스승 우암(尤庵)이 제주도로 유배되자 동문(同門) 40여명과 함께 이를 변론하다가 회령(會寧)에

유배되어 5년동안 그곳에서 후진을 교육했다. 그 후 청풍부사(淸風府使)를 지내고, 장령(掌令)에 임면

되었으나 사퇴하고 연풍에 내려와 수암 권상하(權尙夏)와 함께 경사(經史)를 강론하고 사문(師門)의

유적을 찾아다니며소일했다. 집의(執義)로 기용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그의 저술로는《直劑集》《

自省編》《僞學績方》등이 있다. 이 옥산사의 건물구조는 정면 3간, 측면 2간 규모의 맛배지붕이며,

옥산사 현판 오른쪽에 옥산사중수기(玉山祠重修記)가 있고, 왼쪽에 옥산사기(玉山祠記)가 걸려 있다.

옥산사에 들어서는 입구 돌계단 왼쪽에 1983년에 세운 옥산사중건기비(玉山祠重建記碑)가 있다.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

충주에서 서울방면으로 향하는 38번 국도를 따라 감곡면 소재지에 다다르면, 남쪽으로 3번도로와 갈

라지는 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에서 3번도로로 접어들어 700m쯤 내려가면 감곡중학교가 나타나며, 그

뒤편(서족)으로 '선돌바위돌'이 펼쳐지는데, 이 선돌바위돌 가운데에선돌 두기가 자리하고 있다.

선돌은 경기도 장호원읍과 충북 음성군 감곡면의 경계를 가르며 흐르는 淸渼川을 바라보며, 암·수한쌍

이 서 있다.

가. 1호 선돌

남성선돌로 암질은 화강편마암이며, 선돌거리들 논길가에 N-45-E 방향으로 서 있어, 청미천쪽을 바

라보고 있다. 청미천과는 동쪽으로 100m쯤 떨어져 있으며, 남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선돌의 크기

는 296×194×650㎝로서 큰 편이며 갈거나 쪼아서 만든 구멍(Cup-mark)은 없으나, 뒷면 오른쪽에서

다섯군데의 떼임질 자욱이 관찰된다. 떼임질 자욱(흠)은 모두 바른 네모꼴로같으나, 크기에 있어서는

너비 3.5∼4.5㎝, 깊이 1.0∼11.0㎝로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떼임질된 간격은 33.5∼

36.0㎝ 사이로 거의 동간격으로 떼임질이 베풀어졌고, 떨어진면으로 보아 얇고 넓게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떼임질된 면은 고르지 못하다. 떼임질이 베풀어진면과 이웃한 동쪽면 중간쯤의 편편한 면에는

'崇禎十二年庚辰十月二十二日立'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이는 1640년으로, 이것을 선돌바위돌이라

부르는 지명과 함께 좀더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 2호 선돌

감곡중학교 북쪽 200m쯤에 있으며, 선돌과 북쪽으로 20m떨어져서는 장호원 우회도로가 건설되어 있

다. 1호 선돌과는 동쪽으로 350m쯤 떨어져 있고, 1호와 동-서로 짝을 이루며 있는 여성선돌이다.암질

은 거정화감암으로 두께가 얇고 넓은 판자골 형식을 취하고 있다.선돌의 크기는 168×132×40㎝이며,

N-20-W 방향으로 서 있어 선돌의 앞면이 청미천쪽을 향한다.이곳 1호, 2호 선돌에 대하여 특별히 위

하거나 달리 부르는 이름은 없다. 그러나 선돌이 들 가운데에 짝을 이루고 있는 점, 선돌에 손질이 베

풀어진 점, 청미천의 물가에 선돌의 면이 물을 바라보고 서있는 점, 여성선돌에 비해 남성선돌이 당당

하고 월등하게 만들어져 있는 점등이 특히 주목되며, 선돌문화 해석에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겠다.

(충북대학교선사문화연구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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